50m에 달하는 네 개의 하얀 굴뚝이 있다. 땅에서부터의 높이는 101m로 런던의 스카이라인 중 하나를 담당하고 있는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Battersea Power Station)은 1930년대에 늘어나는 전기 소모를 감당하기 위해 지어졌다. 1933년부터 1983년까지, 50년 간 버킹엄 궁전을 포함한 런던 전역의 전기의 20%를 공급하던 당시 가장 큰 규모의 화력 발전소였다. 하지만 점점 운영비는 증가하고, 생산량은 줄어들면서 문을 닫게 되었다. 그 이후 건물은 관리되지 못하고 30년동안 방치되어 많은 곳이 녹슬고 부식되고, 굴뚝은 금이 갔다. 이로 인해 주변 환경은 좋지 않은 영향을 받아 폐허가 되었고, 런던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이를 해결하고자 이 건물의 활용을 위한 많은 계획이 세워졌으나, 비현실적 계획과 공공 교통시설의 부재로 접근성이 좋지 못하여 실패하였다. 결국 2014년까지 이 상태가 유지되었다. 그러다 2012년, 말레이시안 회사가 인수하여 개발을 거친 뒤 내부와 외부 환경을 쇼핑몰과 공원으로 변화를 주어 깔끔하게 새단장하였다. 주변 또한 주거공간으로 함께 개발되어 지역 발전에도 이바지하였다. 그 과정에서 유니버설디자인이 적용되어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유니버설디자인이란 나이나 성별, 장애 여부, 문화적 배경이나 언어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사용할 수 있고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디자인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이용자의 물리적 노력은 최소화하도록 하면서 다양한 신체 크기와 자세를 가진 사람이 이동 방향에 따라 접근이 용이하도록 디자인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불안한 정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인간 존중과 장애인의 권리 보장, 고령화 사회와 발맞춰 유니버설디자인의 중요성이 점점 대두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별, 나이, 장애 여부와 관계 없는 접근성의 확대로 인한 경제적 효과도 상당하다. 이와 더불어 글로벌 시대에 다양한 문화적 관점을 포용하고 사용자의 심리적 안정을 통한 사회 통합과 안정을 꾀하게 되는 무형적 가치 또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과거 화력 발전소에서 미술관으로 바뀌어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로 개방되고 있는 테이트 모던(Tate Modern)도 있다. 이 곳은 기존 뱅크사이드 파워 스테이션(Bankside Power Station)으로, 1981년 석유 가격의 증가로 인한 비용적 문제와 공기 오염을 가속화시키는 환경적 문제로 인해 문을 닫았다. 그 이후로 1994년까지 건물을 보존하느냐 철거하느냐 꽤 오랜 세월 논란과 함께 방치되었다. 그러다 결국 보존하기로 결정이 되었고 2000년, 공공적으로 개방되는 현대 미술관으로 바뀌었다. 이전 사례의 배터시 파워스테이션보다는 10년 이상 빨리 개발이 된 셈인데, 현재 이 곳은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수많은 관광객들과 시민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런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이 외에도 런던 템즈 강 주변의 발전소였던 이 두 곳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유니버설디자인이 적용되어 바뀌었으며 시민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아보자.
첼시 브릿지를 건너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으로 걸어가는 길에는 ‘POWER’ 라는 형형 색색의 글자와 함께 작은 박물관 같은 공간을 볼 수 있다. 이 글자에 대한 설명도 자세히 적혀 있는데, 영국의 대표적인 예술가이자 디자이너인 모락 마이어스코프(Morag Myerscough)와 그녀의 팀이 손수 페인팅하여 만들어진 공공 미술이라고 한다. 설명에 의하면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에도 포함되어있는 이 글자는 과거로부터 영감을 받아 긍정적인 미래를 바라보고자 만들어졌다고 한다. 덕분에 어둡고 칙칙한 기찻길 아래의 빈 공간이 통통 튀는 이색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바로 이 글자 아래에 위치한 작은 공간 안에는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의 흥미로운 사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과거 발전소에서 직접 사용했던 부품뿐만 아니라 오래된 관련 영상, 사진, 모형 등을 볼 수 있으며 전기가 어떠한 방식으로 생산되었는지 그 과정을 그림으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은 남녀노소 관계없이 과학과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배울 수 있는 교육적인 역할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곳이 처음부터 인기가 있던 것은 아니다. 1920년대에 처음 건물에 대한 설계가 제안되었을 때, 사람들은 흉물스럽다고 하고 항의했다. 하지만 빨간 전화박스를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자일스 길버트 스콧(Giles Gilbert Scott) 경에 의해 벽돌과 굴뚝이 있는 대성당 스타일로 디자인되어 웅장한 산업용 건물이 탄생되었다. 그 결과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은 패션 잡지 ‘하퍼스 바자’나 ‘엘르’, 영화 ‘다크 나이트’, ‘킹스 스피치’, 드라마 ‘닥터 후’와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커버의 촬영에 등장했으며, 콘서트와 페스티벌의 장소로도 쓰이며 문화와 디자인의 아이콘으로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어찌보면 처음부터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썼던 건축물 본연의 모습을 되찾은 것은 아닌가 싶다.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은 발전 중단 이후 오랜 세월 동안 방치되었다가 2012년, 42에이커에 달하는 면적을 재개발하기 위해 계획되었다. 이 과정에서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시행되었으며 역사적인 건축물을 보존하며 동시에 사회 통합적 기능을 하는 문화 복합 공간으로 탈바꿈되었다. 그 결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돕고 깨끗하고 밝은 분위기로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첫 번째로 ‘접근성’의 관점에서 보자면,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은 유모차를 끄는 가족단위의 방문객을 포함한 남녀노소 많은 주민들이 대중교통으로 쉽게 방문할 수 있다. 건물은 지하철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 역에서 걸어서 5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도 5분 거리에 3개가 있다. 각 매장마다 불필요한 턱은 없으며, 건물 내부 각 층은 모두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로 접근이 가능하다. 또한 화장실이나 기저귀를 갈 수 있는 곳의 안내판은 직관적인 그림으로 디자인하여 모국어에 상관없이 알기 쉽게 하였다. 두 번째로 ‘포용성’ 의 관점에서는 강아지와 함께할 수 있는 식당들이 굉장히 많다는 점과 어린이와 유아에게도 친화적인 식당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내부는 반짝이는 전구와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으로 따뜻한 겨울 분위기를 만들어 내면서 ‘심리적 편안함’을 추구하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주요 원칙을 지켰다. 또한 발전소 밖에는 시민을 위한 공원과 놀이터를 제공하여 모든 세대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포용성이 돋보인다. 그 중 놀이터는 형형 색색의 색깔로 꾸며져 보기만해도 모든 이들의 기분을 즐겁게 한다. 이 곳은 조경회사 LDA에서 디자인을 맡았으며, 어린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와 보호자들 또한 아름다운 공간을 즐길 수 있게 하였다. 아이들이 나이가 들면서도 자연스럽게 놀이 공간이었던 곳을 추억의 공간으로 인식하게 되고, 다시 이 곳에 오고 싶도록 만드는 것이다. 또한 건물 내부에는 과거에서 사용했던 부품이 곳곳에 장식되어 있고, 실제로 공간 이름도 ‘보일러 하우스’, ‘컨트롤 룸 B’ 와 같이 과거의 이름을 사용했다. 이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주면서 공간에 대한 상상을 불러 일으켜 흥미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하였다. 누구나 자유롭게 피아노를 칠 수 있도록 표지판과 함께 아늑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사람이 서 있을 수 있는 큰 체스판도 마련되어 있어 이용객들이 즐거운 시간을 갖도록 하였다. 이렇게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 곳곳에서 다양한 연령대가 이용 가능한 시설을 설치하여 유니버설디자인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표지판이나 간판의 디자인은 매우 단순했다. 유니버설디자인의 측면에서 보면 모두 파워스테이션의 기둥색깔과 비슷한 진한 갈색을 사용하여 분위기를 맞춘 점이 심리적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는 점에서 목적이 부합한다. 마찬가지로 화장실에는 아기들의 기저귀 가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표지판으로는 아기 그림이 단순한 이미지로 나타내어 있다. 이는 성별에 상관없이 아기들을 돌본다는 성 평등 의식을 심어줌과 동시에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부모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직관적으로 공간의 의미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유니버설디자인적 기능을 한다. 또한 효율적으로 공간을 사용하고 불필요한 공간을 절약하여 다른 신체적 약자에게 더 공간을 내어줄 수 있게 되어 유니버설디자인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게 된다. 건물 바깥에 있는 쓰레기통은 매우 높이가 낮아 어린 아이들도 쓰레기를 쉽게 버릴 수 있게 하며 동시에 몸이 안 좋거나 휴식이 필요한 사람은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의 기능도 한다. 어른의 시각에서는 불편할 수 있지만, 모든 시설을 사용할 때 기득권의 입장에서만 볼 게 아니라 어린 아이들이나 노인의 시각에서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 유니버설디자인의 목적과 부합함을 알 수 있다.
테이트 모던과 배터시 파워스테이션은 모두 갈색 벽돌을 사용한 외관으로 겉으로 풍기는 느낌이나 내부의 모습이 매우 비슷했다. 다른 점은,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은 굴뚝이 흰색 원기둥인데 반해 테이트 모던은 굴뚝이 사각형이고 갈색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두 장소 모두 교육적 기능을 한다는 점이 비슷했다. 특히 테이트 모던은 학생들이 견학을 왔을 때 선생님을 위한 장소나 점심 식사 공간, 화장실을 따로 제공한다는 점이 좀 더 관람객들을 배려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테이트 모던의 입구는 매우 완만한 경사로 되어있다. 경사 각도는 4.76도로 휠체어 이용자 및 장애인을 고려하여 접근성을 용이하게 하도록 설계하였다. 일반적으로 1:12의 비율이 높은 접근성의 표준이 된다고 하는데, 테이트 모던은 이것이 잘 지켜진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모든 곳이 엘리베이터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유모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곳곳에 있었다. 걷기 힘든 유아를 동반한 어른들도 부담없이 올 수 있게 한 점이 유니버설디자인이 잘 적용된 예라고 볼 수 있다.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방문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고, 해석과 토론의 장을 제공하여 생각을 넓고 깊게 하도록 도와주는 공공적 교육의 기능을 한다. 또한 ‘테이트 드로우(TATE DRAW)’라는 방에서는 자유롭게 타블렛으로 그림을 그리고 결과를 스크린으로 띄워 주어 마치 내가 작가가 되어 전시를 하듯, 간접 체험의 기회를 준다. ‘디지털 접근성’의 관점에서 타블렛이나 컴퓨터가 집에 없는 사람들도 누구나 창작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콰이어트 룸(QUIET ROOM)’은 신경 다양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심리적 접근성’의 측면에서 큰 도움을 준다. 신경증이 있는 사람들은 사실상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려면 많은 용기와 도움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이 때, 이러한 공간의 존재는 그러한 사람들이나 주변 가족들에게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외에도 사람이 많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오래도록 걷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갤러리 환경에서 벗어나 조용한 시간을 갖도록 한다는 점이 박물관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덜게 해주며, 박물관에게 배려를 받고, 박물관과 친근해 지는 느낌을 갖게 해준다. 하지만 이 곳은 ‘물리적 접근성’ 또한 용이하여 장애인을 위한 버튼도 따로 마련되어 있고, 턱은 어디에도 없다. 이러한 독특한 방식은 테이트 모던만의 배려가 아닐까 하는 그 사려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다른 박물관에서도 이러한 공간이 생긴다면 유니버설디자인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이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서서 관람을 하면 힘든 사람들을 위해 간이 의자도 준비되어 있다.
과거에 석탄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같은 용도였던 이 두 장소가 어떤 점은 비슷하지만 다른 방향으로 유니버설디자인이 적용된 것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모두 다 유니버설디자인의 기본 원리인 ‘누구나 편리하게 접근하고 이용함’을 추구하는 것이기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건축물들을 파괴하지 않고, 보수 및 보존하여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발전해 나가는 영국의 유니버설디자인. ‘배려’도 받아 본 사람이 ‘배려’를 할 수 있다. 유니버설디자인을 통해 모두에게 이러한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 대한민국 국민에게서 나아가 세계 시민들이 편안한 새해를 보내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