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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안전을 위해 발명품을 개발하는 경찰관이 있다고?

1989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직 후 34년 동안 경찰관 생활을 통해 수많은 아이디어로 시민의 안전을 지키고 있는 유창훈 경정. 유 경정은 현재 남양주남부경찰서에서 ‘112 종합상황실장’으로 남양주 남부 경찰서 관내 112 신고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다. 언뜻 보면 다른 경찰관과 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유 경정은 경찰 내에서 발명왕 ‘에디슨’으로 불린다.
유 경정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발명품이 현재 우리 생활을 더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성범죄 예방을 위해 도입한 ‘특수 형광 물질’과 어르신의 보행 중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춘 ‘장수 의자’, 전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LED 바닥 신호등’ 모두 유 경정의 손을 거쳤다.
더 많은 국민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게 유니버설디자인으로 다양한 발명품을 개발한 유창훈 경정. 에디슨이라는 표현에 “다른 경찰관들과 같은 평범한 경찰관”이라며 “국민이 불안해하는 요인을 해결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경찰에 입직 후 국민의 안전만 바라온 유 경정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경찰 내에서 ‘에디슨’으로 불린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아이디어를 얻나요?

국민이 불안해하는 부분을 공유하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성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특수형광물질’, 교차로에 설치해 노인 보행 중 사망을 예방하는 ‘장수의자’, 스몸비족(Smombie)의 보행 환경 개선을 위한 ‘LED 바닥 신호등’ 모두 국민을 위해 생각한 결과입니다.

모든 발명품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그중에서 먼저, 특수 형광 물질에 대한 이야기부터 듣고 싶습니다. 언제, 어떻게 시작된 발명품인가요?

2013년 당시, 성범죄 문제가 심각한 때였어요. 너무 많이 발생했죠. 모든 범죄가 다 나쁘지만 그중에서도 성범죄만큼 나쁜 범죄는 없기에, 사전에 차단할 방법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또한 발생해서는 안 되는 범죄이지만, 재산 범죄의 경우엔 피의자 변상이라는 카드가 사건을 원점으로 돌릴 수 있는 가능성으로 존재하지만, 성범죄는 이 사건 이전으로 돌이킬 수 있는 가능성이 전무합니다.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고, 피해자의 인격은 말살되니까요. 삶의 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죠. 어떻게 하면 성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까… 오래도록 생각하다가 경사 시절 감식 업무를 했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알고 지냈던 감식 물품 판매자로부터 유용한 팁 하나를 얻게 되었습니다. 치약 같은 약품이 도포된 곳에서는 지문 등이 잘 지워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기록이 잘 보존된다는 거죠.
영국 런던 등지에서는 이미 특수형광물질이 도입됐다는 뉴스를 봤어요. ‘우리나라도 도입하면 참 좋겠다’ 하고 생각하던 때에 순천향대학교 법과학대학원 유재설 교수가 대학원생과 특수형광물질을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실험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그길로 천안으로 내려갔죠. 특수형광물질을 직접 보니 꽤 유용하겠더라고요. 문제는 비용이었습니다. 작은 물감통에 든 특수형광물질 가격은 개당 약 3만 원. 동네 전체에 도포하려면 약 천오백만 원 정도 들겠더라고요. 그래서 지자체와 논의 후에 시범 운영했습니다.

유창훈 경정이 꺼낸 특수형광물질.
구리시에 시범적으로 특수형광물질을 도입한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어떤 성과가 있었나요?

구리시 경우, 매년 성범죄 1~2건 발생 지역에 특수형광물질을 도입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성범죄 발생 0%가 되었습니다. 물론 다른 요인도 있었겠지만, 상당히 뿌듯한 결과죠. 나아가 우리 지역뿐 아니라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도 특수형광물질을 쓰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입니다. 큰 성과를 이룬 지역은 성남시인데, 특수형광물질 도입 후 범죄율이 90% 이상 감소했다고 합니다. 특수형광물질은 각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경찰청, 경찰서가 협력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8년에는 장수의자를 발명했습니다. 이 발명품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고요.

2018년 어느 날이었어요. 어르신들이 무모하게 무단횡단을 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대체 왜 어르신들은 이렇게 위험하게 무단횡단을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그러다 별내파출소장으로 발령받았는데, 파출소장 업무 중 하나가 교통안전 홍보 활동이거든요. 마침 교통안전 홍보 활동을 위해 경로당이나 노인정 등을 방문하게 됐고, 업무를 다 마치고 나서 어르신들에게 “왜 무단횡단을 하세요?”라고 직접 묻게 됐어요. 예상 답변은 ‘치매’였는데, 상상하지도 못한 답변을 받아 놀랐습니다.
“허리와 다리가 아파 보행신호를 기다릴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무단횡단을 해요.”
아차 싶었습니다. 신도시는 편도 3~4차로, 왕복 6~8차로 구간이 많습니다. 자연히 보행자 신호가 떨어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시간을 어르신들은 기다릴 힘이 없고요. 그러다 우연히 한 어르신이 리어카에 앉아서 신호를 기다리는 모습을 봤습니다. “이거다!” 생각했죠.

구리역 인근에 설치된 장수의자.
아이디어 구체화 과정이 힘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장수의자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 난 후, 어떻게 설계하고, 설치하면 좋을지 공공장소를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아파트 놀이터 공원의 운동기구 의자, 전봇대 작업 거치대, 교차로 부근 교통신호기 선반, 공중화장실 유아용 의자 등에 놓인 여러 형태의 의자를 관찰하며 의자 설계 방향성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었기에 쉽지 않았습니다.
혼자 이 작업을 실행해내기에 힘에 부쳐 포기하고 싶었을 때, 평소 알고 지내던 박미숙 변리사로부터 제작 공장을 소개받을 수 있었습니다. 어려움을 돌파할 수 있는 기회였고, 재정적 어려움이 있었던 터라 제작비 대신 장수의자 특허권을 양도하는 조건으로 제작하는 데 합의할 수 있었습니다.

특허권을 양도한다는 점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특허권 양도에 대한 미련은 없습니다. 공직자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떳떳하고 싶거든요.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마다할 사람은 없습니다만, 저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관으로서 특허권을 양도하는 것이 본분에 충실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수의자는 어떤 모습인가요?

시민분들의 통행에 방해되지 않게 유압 댐퍼를 사용해 접이식으로 만들었고, 고장 시 부상 방지를 위하여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했습니다. 어르신들은 뼈가 약하니까 조금만 부딪혀도 골절상을 입을 수 있으니까요.
의자에 노란색 페인트를 칠한 까닭은 시인성을 높이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설계한 발명품인 만큼, ‘장수하세요’라는 의미를 담아 장수의자라고 명명했습니다.

장수의자는 다양한 편의성을 갖췄다.
장수의자 설치 후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장수의자를 설치하고 2019년 4월 5일 KBS2 ‘아침이 좋다’에 소개된 이후 공중파와 한국일보 등 국내 다수의 언론사를 통하여 장수의자 설치에 대한 긍정적인 보도와 영국 BBC에서도 장수의자 소식을 전했습니다.
“평소 다리가 아파서 신호등을 못 기다린 경우가 많았는데, 이 의자가 있으니 너무 좋고 편하며, 정말 유용해서 고마움을 느낀다”며 몇몇 어르신들께서 별내파출소까지 와서 감사 인사를 전해주었습니다. 기분이 좋았죠.
수많은 국민에게 손 편지도 받았습니다. 생면부지의 국민에게서 받은 손 편지가 정말 좋았습니다. 하나는 간호사가 보내준 편지인데, 장수의자를 보면서 “자기도 간호 활동을 이렇게 좀 열심히 하겠다”라고 했고, 하나는 장애가 좀 있는 국민이 현관에서 의자에 앉아 신발을 신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검색하다가 뉴스 보고 자기가 찾던 의자가 이거라면서 여분이 있다면 보내줄 수 있는지였습니다. 그래서 보냈더니 설치해서 사진까지 보내줬습니다. 장수의자 설치 후 수많은 생명을 지킬 수 있었죠.

LED 바닥 신호등도 발명했다고요.

2018년도 남양주 교통관리계장으로 근무할 때,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한 보행자의 모습에 착안한 발명품입니다. 그분은 휴대폰을 보느라 보행자 신호로 바뀐 줄도 모르다가 신호가 다 끝나갈 때야 겨우 뛰어서 건너더라고요.
사무실로 돌아와 교통시설을 담당하는 직원에게 스몸비족(스마트폰을 보며 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해 보행 신호 정보를 지면에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물었는데, 마침 도로교통공단에서도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제품을 개발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남양주시청 교통 담당 직원과 함께 서울 양재동 소재 도로교통공단에 직접 방문해 사업을 빨리 진척시킬 수 있었고, 남양주시청과의 협조로 도농역 앞 교차로에 시범 설치할 수 있게 됐습니다. 결과는 대박이었죠.

도농역 전경.
LED 바닥 신호등도 전국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직접 만든 발명품이 우리나라 전역에서 사용된다는 소식을 접할 때, 어떤가요?

비교적 낙후된 지역에서도 LED 바닥 신호등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전국적으로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설치된 것이죠. LED 바닥 신호등을 볼 때면 자식을 만나는 듯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무척 좋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흐뭇함이 크죠.

도농역 교차로에 설치된 LED 바닥 신호등.
유창훈 경정에게 유니버설디자인이란?

유니버설디자인은 특별한 소수자의 것이 아닌, 국민 누구나 누리고 접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장수의자와 LED 바닥 신호등, 특수형광물질은 그 자체로 유니버설디자인이죠. 유니버설디자인은 사회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결한다는 측면에서 국민의 안전한 삶을 위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배려의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시각에서 무엇이 부족하고 불편하지, 국민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제 발명품 모두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어떤 경찰이 되고 싶나요?

‘우리 편’이라는 말로 불리고 싶습니다. 국민에게 경찰이 국민의 편으로 인식되길 바라죠.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줬던 경찰관으로 남고 싶습니다.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경찰관’으로 남고 싶다는 유창훈 경정.

보행자를 위한 배려, 횡단보도 앞 신호등을 오래 기다리기 힘든 어르신을 위한 배려, 국민이 불안하지 않게 생활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유창훈 경정의 발명. 유 경정이 말한 것처럼 유니버설디자인은 ‘배려’를 바탕으로 사회의 문제점을 발굴해 유니버설디자인 관점에서 개선책을 제시해 국민의 안전한 삶을 책임지는 것이 아닐까.

조수연 UD기자단

세상을 바꾸는 유니버설디자인, 세상을 바꾸는 노력에 함께하고 싶습니다.
2024.
01. 25.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