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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변장으로 불편을 직접 경험한 디자이너가 있다고?

흰머리 가발, 솜으로 막은 귀, 철제 보조기를 달아 불편한 다리, 뿌연 안경을 써 앞이 보이지 않는 눈. 26세 나이에 80대 노인으로 변장한 모습으로, 4년 동안 100개의 도시를 다닌 디자이너가 있다.
그는 직접 노인이 되어 겪은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저상 버스, 소리 나는 주전자, 양손잡이용 가위를 만들었다. 그가 노인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던 이유는 바로 그의 할머니를 ‘공감’하기 위해서였다. 근력이 약해 냉장고 문을 열기 어려워하는 할머니를 보고 할머니에게 요리하는 즐거움을 되찾아드리고 싶었던 손녀의 바람이었다.
49년의 시간이 흐른 2023년, 여전히 디자인의 중요한 가치는 ‘공감’이라고 말하는 디자이너 페트리샤 무어를 만나 공감으로 디자인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당신의 디자인은 ‘창의성은 사용자를 공감하는 경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 을 말해줍니다. 사용자 중심의 창의적인 디자인을 위해서는 일상 속 어떤 경험이 필요할까요?

가장 쉽고 직접적인 방법은 제품을 사용하게 될 사람들과 함께 팀원이 되어 디자인을 하는 것입니다. 즉 ‘디자인 위드’를 말씀드리고 싶네요.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 노인, 자폐를 겪고 있는 아이들이 제품 사용자가 될 경우, 그들과 같은 팀원이 되어 그들의 불편을 함께 경험하고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겪는 것을 완벽하게 다 경험할 수는 없지만, 그들 가까이에서 이야기를 듣고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지켜보면 좋은 결과의 디자인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이 바로 새 시대의 디자인이자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 개발 노하우겠죠.

44년 전에는 직접 분장해서 보이지 않았던 노인의 불편함을 찾아냈다면, 이제는 당사자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디자인은 무엇인가요?

나이와 상관없이 개인의 건강, 개인의 복지 상태, 개인의 능력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디자인입니다. 44년 전 노인 분장을 했던 저와 지금의 가장 큰 변화는 교통사고로 인해서 실제로 다리 부상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력으로 심장병 약을 먹고 있고요. 하지만 이런 다리 부상과 질병은 나이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그저 개인의 건강, 개인의 복지 상태, 개인의 능력에 따른 상황의 문제일 뿐이죠. 따라서 디자이너는 노인, 어린이 등 특정 연령층이 아닌 사용자의 개인 상태에 따른 다양한 상황을 다뤄야 합니다. 디자인은 사용자가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느냐에 초점을 맞춰 생각해야 하는 것이죠. 부상과 같은 개인의 상황은 디자인뿐 아니라 건설, 건축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이 설계를 할 때도 고려해야 하는 요소이고요. 다행스럽게도 제가 노인 분장을 했던 1979년도와 비교하면, 의료 기술의 발달로 지금의 80대분들이 훨씬 더 건강한 삶을 살고 계시죠. 다만 디자인 측면에서는, 여전히 발전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어요.

당신이 애용하는 디자인 제품은 무엇인가요?

저희 회사 옥소(OXO) 제품을 즐겨 쓰고 있어요.(웃음) 제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것은 대부분 모두 유니버설디자인 제품들이에요. 사용하기 불편한 제품들은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죠. 지금 제가 입고 있는 옷도 유니버설디자인 제품이에요. 보시다시피 이 옷은 지퍼나 버튼이 없어요. 그래서 관절염 환자분들께서 입고 벗기가 편하죠. 저는 관절염을 앓고 있진 않지만 이 옷을 입고 있으면 제가 밖에 있는지 침대에 있는지 모를 정도로 아주 편안함을 느껴요. 또한 이 옷은 화학 세제 세탁, 드라이클리닝이 필요 없는 옷이기 때문에 지구 보호에도 아주 유익한 제품입니다. 나아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성들과 협력해 일자리도 창출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지구를 보호하고 재정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의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의 옷을 입음으로써 저도 그러한 일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것도 유니버설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겠죠.

신입 사원 시절, 노인을 위한 냉장고 개발을 제안했지만 대중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 당한 경험이 있으셨다고요.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위해 누군가를 설득하고 갈등을 해결해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판단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어떻게 돌파해 나갔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주로 회사의 재정적인 결정을 할 수 있는 임원진, 이사회 분들과 디자인 미팅을 갖습니다. 그 자리에서 모두를 위한 디자인에 대해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그분들의 표정을 보면 제 아이디어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의자에서 일어나서 오른손잡이인 그분의 오른손에 테이프를 칭칭 감은 뒤 그분께 왼손으로 한번 글씨를 써보라고 말씀드리죠. 그랬더니 그분이 “이렇게 테이프를 감아놨는데 어떻게 글씨를 쓰겠어요?”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답했죠. “그러면 전쟁에 참여해 부상을 당해서 손을 잃은 군인들,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오른손을 갖지 않고 태어난 아이들의 상황을 생각해 보세요.” 그들에게는 다소 당황스럽게 들리겠지만, 저의 솔직하고 강력한 화법을 통해 그분들은 즉각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역지사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시연을 통해 회사의 현실적 결정이 누군가에겐 얼마나 잔인한 경험을 주는지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죠. 이러한 설득 과정은 우리 모두에게 도전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모두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은 기업과 정부의 책임이고요.

그러한 설득과 해결의 과정을 도전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유니버설디자이너들은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젊은 유니버설디자이너들을 만날 기회가 많은데요. 그분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유니버설디자인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해 좌절감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순간이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용기와 인내심 그리고 자기 회복력을 갖고 포기하지 말라고 말씀드립니다. 괴롭다고 포기해버리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니까요. 저는 젊은 디자이너분들, 유니버설 디자이너분들께서 계속해서 본인의 일을 하면서 꿈을 꾸고, 계속해서 희망을 품고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유니버설디자인이 끝내 만들어질 수 있으니까요.

지난 10월 26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 국제포럼에서 ‘포용력 있고 안전한 도시로 나아가려면’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전해주신다고요. 연설을 기대하고 있는 청중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려요.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을 그려 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그들의 영감이나 바라는 것을 바탕으로, 일상에서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할지 명확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어요. 개인은 아주 강력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개인이 다수가 되어 힘을 합치면 성취하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강력한 체인이 되기 위해서는 아주 약한 연결고리들이 잘 이어져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는데요. 우리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의 필요에 더욱 집중해 힘을 보태야 한다고 믿습니다.

어떤 디자이너로 기억되고 싶나요?

좋은 디자이너보다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얼마 전에 모교를 방문해 학생들에게 제 커리어에 대해 연설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그때 어떤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을 했어요. 그 질문을 듣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어요. 그 누구도 저에게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미소를 짓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대답했고 그 질문을 한 학생과 그 주변, 전 학생들이 박수를 쳐주었어요. 저는 디자이너가 다음 세대에게 유니버설디자인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일을 수행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에게 유니버설디자인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지 않는다면 제가 하는 일이 실패한 거나 마찬가지죠. 감사하게도 그곳의 학생들은 제 메시지에 충분한 이해와 공감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뛰어난 공감력과 동정을 갖고 있는 Z세대에게 큰 희망을 품습니다. 그들은 그 능력으로 평화와 평등을 위해 열심히 일할 것이고 그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고 북돋을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Z세대를 포함해 모든 이들과 좋은 친구로서 같이 이야기하면서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유니버설디자인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요?

우리가 일상 속에서 하는 작은 일들을 최상의 능력으로 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능력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죠. 저는 이것을 디자인 존엄성이라고 말합니다. 유니버설디자인은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든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만들고, 모든 단계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저희 할머니께서는 나이 든 자신의 모습을 가리키면서 계속 변화하는 예술 작품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저는 전쟁터에서 팔다리를 잃거나 화상을 입은 군인분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분들에게 “여전히 당신은 잘생기고 매력적입니다”라는 말을 건넵니다. 새로운 시대의 디자인은 제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감성적인 이슈, 정치적인 이슈 그리고 개인의 상황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현아 UD기자단

다 같이 잘 살고 잘 죽는 법을 질문하고 글 씁니다.
2024.
01. 25.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