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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히든 피겨스〉로 비춰보는 현재 그리고 미래

"저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하루 800m를 걸어야 해요. 무릎 밑까지 오는 치마에 하이힐도 신어야 하죠. 그리고 진주 목걸이라뇨? 전 진주 목걸이가 없어요. 흑인한테는 진주를 살 만큼의 급여를 주지 않으니까요!”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 경쟁이 뜨거웠던 시기, 인종차별이 심했던 미국 버지니아주에 위치한 항공우주국 나사(NASA)에서 일했던 세 명의 흑인 여성 이야기를 그린 〈히든 피겨스〉의 대사다. 짧고도 강력한 문장은 1960년대의 차별을 대변한다. 차별이 난무했던 역사 속 유니버설디자인이 필요한 순간을 꼽아보자.
모두를 위한 화장실

러시아가 우주선 발사에 성공해 미국의 신경이 곤두서 있던 시기, 백인 남성 직장 상사가 근무 시간에 자리를 길게 비우는 캐서린(타라지 P. 헨슨 분)을 발견한다. 그는 바쁜 시기에 부재한 캐서린에게 화를 내며 어디에 갔었냐고 묻는다. 유색인종 화장실의 존재가 원인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사실 캐서린은 발령 후 줄곧 왕복 40분 거리에 있는 건물의 ‘유색인종 화장실’을 이용해 왔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기본적인 용변조차 제때 해결하지 못했던 것. 아무도 인지하지 않았던 불편한 사실은 그의 한마디에 비로소 인식된다. 영화 속에선 차별로 인한 화장실의 거리를 중점으로 다루었지만,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화장실 내부엔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지 않고, 공간과 위치 모두 획일화되어 있다. 다른 특성을 지닌 ‘제2의 캐서린’은 화장실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삶의 질과 직결되는 화장실이지만, 〈히든 피겨스〉에서 사용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제공되지 않는다.
다행히도 직장 상사가 곧바로 문제를 인식하고 화장실 간판을 깨부순다. ‘이 건물에는 유색인종 화장실이 없다. 나사에선 모두가 같은 색 소변을 본다’는 통쾌한 명언과 함께.

누구에게나 공평한 근무 환경

〈히든 피겨스〉속 나사 구성원은 대부분이 비장애인 백인 남성이다. 고용에서 나타난 인종, 장애, 성별에 따른 차별은 업무 시설에도 나타난다. 이들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커다란 칠판을 통해 수식을 계산하고 공유한다. 치마와 하이힐을 입은 주인공은 불편과 위험을 무릅쓰고 시설을 이용해야 한다. <
노인이나 장애인, 몸이 약한 사람에게는 불편한 이용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출근길에는 장애인 주차장이나 경사로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사무실 내부에서도 책상 간의 간격이 좁아 이동 동선이 확보되지 않고 손잡이나 점자도 찾아볼 수 없다.

사라지지 않은 불편함

그렇다면 60여 년이 지난 지금, 오늘날의 현실은 어떨까?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도 갈 길이 멀다. 과거를 지배했던 차별은 형태가 다를 뿐 아직도 남아 있다. 먼저 화장실을 살펴보자. 인도 뭄바이 여성 500만 명 중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가정에는 실내 화장실이 없는데,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공 여자 화장실도 존재하지 않는다.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각장애인의 공공화장실 이용 편의 조사 결과 84%가 이용에 불만족해하고 있으며, 접근부터 이용까지 많은 불편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이유에서든 누군가는 화장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근무 환경은 어떨까? 장애인은 일하는 사회적·물리적 환경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비장애인과 비교했을 때 낮은 고용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중 여성 장애인의 고용률은 더욱 심각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 통계로 보는 장애인의 삶’에 의하면, 2019년 장애인의 취업률은 34.9%로 비장애인의 취업률 60.9%와 26%의 차이를 보인다. 남성 장애인의 취업률은 45.6%, 여성 장애인은 20.3%보다 2배 이상이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취업하더라도 실무 시 제약을 받게 된다.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바뀌어야 할 때

유니버설디자인 7대 원칙 중 공평성은 모든 사람이 성별이나 나이, 장애, 인종 등으로 인한 제약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이를 위해 ‘서울시 유니버설디자인 가이드라인’ 적용 시설의 확대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이용 가능은 물론, 이용에 따른 불편함을 최소화하고 만족감을 높일 수 있다. 이는 누구나 안전하고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는 도시 환경을 조성하고 사회참여를 촉진하는 구조를 만들 것이다.

유니버설디자인이 적용된 사회를 위해 나부터 앞장서는 용기도 필요하다. 〈히든 피겨스〉 주인공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에 맞서며 세상을 바꾸었듯 말이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노력이 사회 이곳저곳에 켜켜이 쌓여 변화를 만들어 낸다. ‘우리’의 노력으로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 그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라본다.

김지연 UD기자단

모두가 소소한 일상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023.
11. 29. (수)